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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 한병철, 문학과 지성사 / 긍정의 배신 - 바버라 애런라이크, 부키

 

 

자기계발서가 넘치는 요즈음,

그런 책들의 대부분에서 강조하는 긍정과 낙관의 태도가 어쩌면,

자기 스스로를 착취하는 틀을 만들어내서,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고찰.

 

p.33

"걸으면서 심심해하고 그런 심심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의 평정을 잃고 안절부절못하며 돌아다니거나 이런저런 다른활동을 해볼 것이다. 하지만 심심한 것을 좀더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어쩌면 걷는 것 자체가 심심함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그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움직임을 고안하도록 몰아갈 것이다. 달리기, 또는 뜀박질은 새로운 움직임의 방식이라기보다 그저 걷기의 속도를 높인 것일 뿐이다. 이를테면 춤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움직임이다. 오직 인간만이 춤을 출 수 있다. 어쩌면 인간은 걷다가 깊은 심심함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이런 심심함의 발작 때문에 걷기에서 춤추기로 넘어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걷기가 그저 하나의 선을 따라가는 직선적 운동이라면 장식적 동작들로 이루어진 춤은 성과의 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사치이다."

 

춤의 기원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설과 비교해가며 가타부타를 따지는 것은 멍청한 짓이고,

다만 심심함에서 우러난, 어떤 일의 성과와는 거리가 먼 엉뚱한 행동들이 예술의 본질일 수 있음을 얘기하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는 예술이 우리 삶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임을 잘 알고 있다.

"예술이 밥 멕여주냐?"는 꼰대들은,

런던의 총 경제활동 중 60% 이상이 문화 예술에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듯.

 

심심함을 소중히 여기라는 저자의 당부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여유와 놂이란, 승리자의 몫이라고.

글쎄 아마도 '재정적인 승리'를 말하는 것일텐데,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요즘은 세상이 내가 돈을 그저 벌게 놔두지도 않거니와,

죽도록 노력해서 그토록 벌고자 하면 내가 댓가로 잃어야 하는 몫이 작지 않을 터다 (젊음, 건강 등).

은수저를 가지고 난 자가 아니고서야 댓가 없는 여유는 갖추기 어려운 것이고,

은수저를 가지고 나온 것은 제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므로 '승리'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럴 때 뻔하디 뻔한 어느 어부와 부자의 얘기가 새삼 기억이 난다.

 

어느 어촌 마을의 오후, 한 어부가 테라스에 앉아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마을에서 돈이 많기로 소문난 부자가 길을 걷던 중에 그 어부를 향해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어부 양반, 아직 해가 중천인데 벌써 이렇게 계셔도 되시오? 남들 벌 때 벌고, 남들 안 벌 때 더 벌어야 부자가 되고, 그렇게 부자가 되어야 여유 있게 놀기도 하고 그럴 것 아니오?"

어부가 답했다.

"이보시오 부자 양반, 지금 당신은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것 같소?"

 

 

긍정과 낙관이 자본주의와 만나 불건전한 소비를 부추겨,

결과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탐욕만을 채우고 스스로의 삶은, 그리고 공동체의 삶은 파괴시킬 수도 있다는 경고.

 

최근의 부동산 대책을 보면 대출 한도와 거래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

경제의 큰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는 건설사 워크아웃을 미루고,

서민들의 집값 대출 상환력이 부족한 현재 시점에 직격탄을 날릴 수 없는 거야 이해한다만,

마치 지금이 대출이라도 껴서 집을 사야 할 적기인냥 광고하는 미디어들의 행태는,

내가 지갑을 열어서 큰 손들이 털고 나갈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긍정적인 추진력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긍정의 의욕과 낙관적인 사고만큼은 그들 못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겪은 사람들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음을 인정하고,

다시 도전할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성공한 자들은 그들의 성공이 온전히 자신들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겸허히 인정하고,

부와 권력을 공동체를 위해 쓸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꿔본다.

 

밤 없이 아침 없고, 뒷면 없는 동전 없듯이,

적당한 회의와 건전한 비판이 동반된 긍정적 활력,

그런 사람을 볼 때면 정말이지 너무 멋있고 부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