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영미권 글들만 읽다보니,
아무리 번역이 유려하다 할지라도,
그 문장이 그 문화권에서 불러일으키는 감흥을 느끼지 못 하는 것 같아 아쉽고 또,
저자가 몇십 평생을 통해 갈고 닦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유머와 위트를 온전히 알아채주지 못 해서 송구스러워서,
한국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책이 몇 권 있지 않아서 찾는 책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
민망해 하시는 사서 아주머니께 인사만 드리고 오는 일이 잦았는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정해놓고 가지 않는 때에는 오히려 작은 규모가 장점인지라,
한국소설이 모여있는 책장 (그래봤자 1미터 너비가 5칸)에는 모두 제목은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유명작들만 있어서,
그저 한 권 쓱 뽑아오면 본전은 뽑게 되는 것이었다.
'칼의 노래'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2001년 당시에 화제였으나 읽지 않고 있다가,
도서관 책장을 눈으로 훑던 중 눈에 확 꽂혀서 곧바로 데려와서 읽기 시작했다.
이순신의 검에 새겨진,
一揮掃蕩 血染山河 (한번 휘둘러 휩쓸어버리니, 피가 산과 강을 물들이다)
라는 말과 같이,
순식간에 읽혀져서 마음을 물들인 이야기.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참고하여, 이순신 1인칭 시점으로 짜여진 터라, 글이 그의 성격을 담은 탓인지,
신중하면서도 과감하고, 간결하고도 섬세하다.
특히 아들 면의 부고를 접하는 대목은 혼자 읽기 아깝다.
...삼수갑산에서 임기를 마치고 고향 아산으로 돌아왔을 때 면은 옹아리를 하면서 첫돌을 넘기고 있었다. 그 아이는 돌이 지나도록 젖을 토했고 푸른 똥을 쌌다. 젖이 덜 삭았는지 똥에서도 젖냄새가 났다. 아내는 변방에서 돌아온 남편을 첫날밤보다도 더 수줍어했다. 아내의 가슴에서는 젊은 어머니의 비린 몸냄새가 났고 어린 면은 입 속이 맑아서 그랬는지 미음을 먹이면 쌀냄새가 났고 보리차를 먹이면 보리 냄새가 났다.
내가 보기에도 면은 나를 닮았다. 눈썹이 짙고 머리 숱이 많았고 이마가 넓었다. 사물을 아래서부터 위로 훑어올리며 빨아당기듯이 들여다보는 눈매까지도 나를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눈매는 내 어머니의 것이기도 했다. 시선의 방향과 눈길을 던지는 각도까지도 아비를 닮고 태어나는 그 씨내림이 나에게는 무서웠다. 작고 따스한 면을 처음 안았을 때, 그 비린 젖냄새 속에서 내가 느낀 슬픔은 아마도 그 닮음의 운명에 대한 슬픔이었을 것이다.
면이 태어난 후에도 종팔품 권관인 나는 함경도 국경과 남해안의 수군진들을 2,3년 도리로 옮겨다녔다. 면은 제 어미와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개구쟁이 때부터 면은 날이 예리한 연장으로 나무나 기왓장을 저미고 자르고 깨뜨려서 모양을 바꾸어놓는 장난을 좋아했다. 그 아이는 연장의 날에 부딪혀오는 사물의 저항을 신기해하는 듯했다. 면의 장난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저것도 별 수 없이 사내로구나' 싶어서 속으로 눈물겨웠다.
무과에 응시하기도 전에 면은 죽었지만, 면의 칼 솜씨는 크고도 섬세했다. 면은 상대의 공세를 극한에까지 유도해 놓고, 그 극한이 주저앉는 순간의 허를 치고 들어가서 살(殺)했다. 적의 칼이 오른편 위에서 내려올 때 면의 칼은 적의 칼을 받아내기보다는 적의 왼편 허를 향해 나아갔다. 발이 늘 먼저 나아가 칼의 자리를 예비하고 있었다. 칼을 낮추고 있을 때도, 면의 칼은 머리 위로 보이지 않는 공세의 기운을 광배처럼 거느렸다. 면의 칼은 수세 안에 공세를 포함하고 있었고, 수세와 공세 사이에 간격이 없었다. 둥글게 말아나가는 부드러움 안에 찌르고 달려드는 격세가 살아 있었고 찌르고 나면 곧 둥글어졌다. 아름다운 솜씨였다.
육지의 적들이 진로를 돌연 아산 쪽으로 돌려, 아산의 고향집과 인근 마을들을 불질렀다는 소식을 나는 암태도에서 들었다. 병조의 공문서를 들고 온 군관이 고향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산에는 관군이나 의병이 주둔하고 있지 않았다. 적들은 이순신의 고향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가토의 특공대 50여 명이었다. 적들은 마을을 불지른 후 곧 본대로 돌아갔다. 밤중에 기습을 당한 면은 가족들을 데리고 어라산 위로 달아났다. 산 위에서 면과 어린 조카들은 불타서 무너져내리는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적이 면을 죽이지 못했으므로 적들은 또 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면이 혼자서 감당해야 할 외로운 몫이었다. 그때 나는 다시 함대를 우수영으로 옮겼다. 면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는 우수영으로 왔다. 큰형님 집안의 종 치수가 왔다. 치수는 말더듬이에 애꾸였는데, 몸이 다부지고 날랬다. 면이 적의 칼에 죽을 때 곡괭이를 들고 함께 싸웠다고 했다. 치수는 싸움의 경위를 소상히 알고 있었다. 나는 말더듬이 치수에게서 들었다.
면은 정면 상방에서 달려드는 적의 칼을 왼쪽으로 피했다. 적의 칼이 땅바닥을 내리쳤다. 면은 다가서면서 적의 오른쪽 허를 찔렀다. 찔린 적이 쓰러지기도 전에 면은 다시 세를 수습해서 뒤로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달려드는 적의 칼을 맞받아쳤다. 적의 칼이 옆으로 밀렸다. 면은 다가서면서 적의 허리를 찌르고 다시 물러서면서 돌아섰다.
허공을 가르던 면의 칼이 갑자기 세의 방향을 바꾸어 왼편의 적을 거슬러 찔렀다. 다시, 면은 돌아서서 칼끝을 낮추었다. 좌우를 노리던 면의 칼이 허공으로 치솟아 돌면서 뒤쪽의 적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면은 돌아서지 못했다. 다시 돌아서려는 순간, 적의 칼이 면의 오른쪽 허벅지를 찔렀다. 면은 왼쪽 다리로 버티고 서서 자세를 낮추었다. 살아남은 적은 셋이었다. 3명의 적을 앞에 두기 위하여, 면은 거듭 뒤로 물러섰다. 허벅지에서 피가 흘러 신발이 미끈거렸다. 면의 자세는 점점 낮아졌다. 면은 뒤쪽으로 퇴로를 뚫지 못했다. 반쯤 구부러진 면은 칼을 높이 치켜들어 머리 위를 막아냈다. 위로 뛰어오른 적이 내려오면서 면의 머리 위를 갈랐다. 면은 비틀거리면서 피했다. 적의 칼이 땅바닥을 쳤을 때 면의 칼은 다시 나아가 적의 허리를 베었다. 그리고 나서 면의 오른편 다리가 꺾여졌다. 면이 다시 세를 수습하려고 몸을 뒤트는 순간, 적의 칼이 면의 오른쪽 어깨를 갈라내렸다. 면은 칼을 놓치고 제 피 위에 쓰러졌다. 스물한 살이었고, 혼인하지 않았다.
적들이 물러간 뒤 산에서 내려오셔서 막내 아드님 시신을 붙잡고 통곡하시다 실신하셨습니다. 큰댁 어르신께서 모시고 갔습니다.
시신은 거두었느냐?
큰댁에서 거두시어 종택 뒷산에 모셨습니다. 묏자리에 흙이 곱고 돌멩이나 풀뿌리가 없었습니다. 오늘이 삼우라고 들었습니다.
알았다. 가거라.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나오려 했다.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면의 죽음을 알아챈 종사관과 군관들은 내 앞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옆방에는 종사관 김수철이 보고 서류를 부시럭거리고 있었고 마루 밖 댓돌 앞에는 창을 쥔 위병이 번을 서고 있었다. 저녁때 나는 숙사를 내와 갯가 염전으로 갔다. 종사관과 당번 군관을 물리치고 나는 혼자서 갔다. 낡은 소금 창고들이 노을에 잠겨 있었다. 나는 소금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아들을 얻은 젊은 아버지의 간단치만은 않은 감정과,
아들을 잃은 늙은 아버지의 오히려 간단해진 감정이,
이렇듯 간결한 문장에 담겨 고스란히 전해진다.
또한 소리와 냄새에 대한 묘사로써 전쟁을 대하는 이순신의 심경을 표현하는 부분들이 특히 탁월하지만 블로그에 모두를 실을 수는 없고,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문장의 힘이 대단하다는 식으로 얘기했었는데,
아.. 이래서 그랬구나... 하며 무릎을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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