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느 부분이나 상황이 아닌, 나의 어릴 때 모습부터 현재의 모습까지, 두루두루 공감할 바가 많은 이야기.
급변하는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수 많은 삶들을 보여주는 점에서는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떠올리게 했고, 어떻게 보면 몇 십 년에 걸친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소녀가 가진 결점을 알지만, 이쁘장한 외모와 그저 치마를 둘렀다는 사실에 반해버린 감정과, 그 소녀가 연락이 뜸한 것을 대하는 초조함에 빚어지는 철 없는 도발, 그로 인해 꼬인 삶 속에서도 그칠 줄 모르는 연애에 대한 욕구, 그 모든 것을 안은 채 성장을 멈춘 소년은, 세상을 향한 작은 복수를 계획하나, 그 복수는 스스로의 가슴에 상처를 낼 뿐이고, 책의 마지막 10장의 분량에 걸쳐 질풍 같이 성장하고 화해한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사람, 말과 행동에서 유머와 위트가 없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풍자와 해학은 때로 진실을 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고, 아무리 진리의 이야기라도, 주구장창 지루하고 재미 없게만 얘기하면 듣는 사람은 고개를 주억거릴 뿐, 감동과 변화는 경험하지 못 할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내가 노회찬의 TV 토론에 반하는 이유이고, 또한 진리를 추구하는 절간의 스님들도 선문답을 통해 그들의 재치를 겨루지 않는가 말이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사회가 곧 스탈린주의와 모택동의 사회였고, 그 시기는 일사분란함이 아니면 사회에 큰 혼란이 올 것임을, 그리고 그런 일사불란함에 농담은 방해 밖에 되지 못 함을 믿는 시기였다. 그런 일사분란함으로 얻은 안정과 성장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회의가 드는 와중에, 최근 MB 정부 들어 느껴지는 우리 사회의 경직이 섬뜩하기만 하다. 문근영의 기부에 대해 좌빨 색깔론으포 비판했던 지만원에 대한 재기 넘치는 댓글이 벌금형에 처해졌으며, G20 포스터에 쥐를 그려 넣은 행위는 '선진국 도약이라는 국민의 꿈과 희망을 더럽힌 행위'라며 처벌 받았다. 공산주의 사회의 자아비판 시간에나 어울릴 만한 발언이 아니고 뭔가.
자신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나, 뒤가 구린 부분을 건드리는 농담의 경우, 당황스럽고 약간은 화가 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라도 여유와 유머로 넘기는 자가 존경 받고 위대하지, 정색을 하고 달려드는 자는 꼴불견일 뿐이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구린 게 있구만"하는 반응을 얻기 십상이다. 자신을 깊이 이해할 때, 세상과 맞짱 뜰 수 있는 용기도 생기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컴플렉스 조차 농담거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던 김어준에서 오쇼 라즈니쉬까지 나는 느꼈더랜다. 그래서, "이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댓글을 보며 킥킥 거렸던 시절이 그리운 요즘이다.
오늘도 나는 기도해야겠다. 날카롭고 재치가 넘치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 풍자와 해학을 행하고, 누군가가 나를 농담거리로 삼을 때는 그보다 더한 재치로 화답하는 '무한도전'의 용기를 내게 허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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