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들이 먹을 우유에 HIV를 포함하고 있는 혈액을 주입했다는 말 한 마디로 그들의 삶에 족쇄를 채우는데 성공한 어머니는, 그후 범인들의 행동에 대해 마치 예측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빠르고 잔인하게 대처, 그들을 지옥으로 인도한다.
추리물이라고 해야 할지, 스릴러라고 해야 할지,
여러 등장인물들 각각의 고백이라는, 일인칭 시점을 이용, 마지막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끔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게 우선 마음을 확 끌었다.
나는 원래, 보수의 장기 집권에서 꽃 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4차원 지향적인 일본 영화,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나마 기타노 다케시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정도만 좋아한다.),
이건 원작자인 미나토 가나에의 재주인지, 감독인 나카시마 테츠탸의 재주인지,
극단적인 인물들에 의한 극단적인 사건, 그에 비해 허점 많고 어수룩한 주변 인물들과, 비극의 장치로만 기능하는 어설픈 경찰 수사와 매스컴 등에도 불구하고,
가족 해체나 이지메 등으로부터 보여지는 아이들의 소외나 상처, 그리고 일그러진 욕구 등에서 서늘한 공감을 얻어내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환기시킨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도 역시 개인의 삶에 영역에 그치지 않고, 삶이 형성되는 과정을 사회적 문제와 연결시켜 보여주면서, 씁쓸한 블랙 코미디의 요소를 잃지 않았던 연출에 깊은 인상을 받았더랜다.
[불량공주 모모코]도 그렇고, 나카시마 감독은 소외된 인간들의 상처, 욕망, 그리고 삶에 대한 의지 등을 보여주는데 관심이 많은 듯 하다.
원작자인 미나토 가나에 역시, 청소년법의 폐해보다도, 아이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좋아, 나카시마 테츠야는 좋아하는 감독 리스트에 추가, 하지만 [불량공주 모모코]만큼은 별로. ㅎㅎ
그리고 미나토 가나에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인간성과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 복수의 과정 자체에 재미도 느끼게 해주니 고마울 따름. ㅎㅎ
가족 해체, 인간 소외에 따른 인간성의 왜곡 등은 물론 많은 공감을 얻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나,
감성의 문제에서만 머물면 안 되고, 반드시 개선을 위한 대책이 현실감 있게 논의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따스한 공감에서 시작하지만, 냉철하고 분석적인 사고를 통해서, 사회에서 올바로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제도나 법규 등에 의한 속박도 물론 고려해야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네 공동체의 모양새 자체를 조금씩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의 개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참 멀고도 험한 길임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큰 각오를 가지고 덤벼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순진한 얘기냐, 그런 것으로 사람이 바뀔 것 같냐"라고, 교육의 힘에 대해 회의를 품고 공격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식사 시간에 부모님께 주워들은 얘기를 친구들에게 그대로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적이 없는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사상이 주변인과 환경에 빚지고 있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인간이 그토록 쉽게 악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거꾸로 좋은 가치관과 사고방식도 꽤 쉽게 심어질 수 있지는 않을까?"
실제로, 내 주변인 중 하나는, 대학교 입학 후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보석이 박힌 검을 들고 밤새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는 했었는데, 왜 그 종교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냐고 조심스레 물어본 내게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누군가를 돕고 살아야 한다고 느끼게 해준 곳은 여기가 처음이야."
그 또한 어릴 때부터 도덕 과목과 윤리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그래서 그 학교에 입학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소외와 아픔을 양산하기 쉬운 사회가 되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경제적으로 넉넉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주말 봉사 활동도 하고 있다.
그 종교가 그에게 주었던 영감과 가치관을, 한국의 정규 교육에서는 줄 수 없는 것일까.
또한, 이러한 문제들을 개인의 인격 탓으로만 돌리려는 시각도 존재한다.
물론 정신 질환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반인륜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만일, 세뇌에 가까운 교육과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생활 수준을 제공하는 것으로, 노조를 만들지 않고 분쟁도 일으키지 않으며, 야근과 특근을 끊임 없이 하고서도 변치 않는 충성심을 보여주는 피고용인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교육과 복지 등을 통해 인간의 삶을 조금 더 나은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믿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교육과 복지로 사람들의 삶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아무도 그런 변치 않는 충성심을 보여주지 않을테니까.).
또한 자살, 살인 등의 심각한 사건에는 개인의 인격 외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용하고, 그 중 어떤 요소들은, 개인은 어쩔 수가 없지만 사회적인 노력으로 조정이 가능한 것들이므로 (예를 들어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 심한 경제적 불균형으로 인한 스트레스 상태의 유지 등), 교육과 복지 등으로 이런 가슴 아픈 사건들을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라는 문구는, 그 자체로 분명 참신하고 따뜻한 말이지만, 자살로 이르는 과정을 형성하는 사회적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개인에게는 더욱 잔인한 말이 된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 이우학교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환경과 인권 관련한 동아리 활동이나 행사, 그리고 과외 학습 금지, 학생들끼리의 토론과 지도 등에서 참신한 노력들을 볼 수 있었다.
다만,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교육적 현실, 즉 성적과 스펙으로 경제적 지위나 생활 수준이 점쳐지며, 그 경쟁에서 앞선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물질적, 심리적으로 큰 패배를 겪어야만 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대안 교육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입학의 과정에서부터 경쟁을 통해 입학 대상을 엄선하기 때문에, 될성부른 나무들만 골라서 키우느라 경쟁의 시기만 앞당긴 것 뿐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지인이 모 종교 활동을 통해서야 비로소 남을 돕는 일의 가치를 알게 된 것처럼, 환경과 인권 등에 대해 조금더 일찍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이우학교의 교육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우학교는 지켜볼 것이며, 내게도 기회가 온다면 꼭 이러한 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
http://www.2woo.net/
아오 어쩌다보니 말이 길어져서 영화 얘기가 아닌 영화 얘기가 되었다.
그나저나,
마츠 다카코 젊어서도 결코 젋게만 보이지 않는 차분한 외모였는데,
이제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는 느낌이.
근데, 보통 이런 얘기를 듣는 내 친구들은 다 울더라. ㅋㅋㅋ
그나저나,
얼굴에 피범벅을 하고 연기를 해야 할 일이 유난히 많았던 어린 배우 둘은,
정말 수고 많았다.
우리 애였으면 저런 연기시키는 것 반대했을텐데. ㅎ
그래도 너희들,
바르게 자라줄 거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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