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와 HIV 감염자에 대한 편견을 다룬 영화.
동성애자이자 HIV 감염자인 앤드류 베켓은 유명한 로펌에서 능력을 인정 받고 있는 변호사로, 큰 소송 건을 담당하면서 다시 한번 그 능력을 입증하지만, 어떤 모함에 의해 해고 당하게 되고, 그 배경에는 자신이 동성애자이자 HIV 감염자라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부당 해고 소송을 하게 된다. 그 와중에 이 사건의 본질은 결국 동성애자와 HIV 감염자에 대한 편견과 공포라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게 되며,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결국 배심원은 부당한 차별과 해고라는 것을 인정, 승소하게 된다.
점점 동성애자와 HIV 감염자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밀러를 보여주면서도, 괜스레 극적으로 눈물 짜는 연출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주는 게 매력.
날씬한 Tom Hanks, Denzel Washington, Antonio Banderas를 보는 재미도 쏠쏠.
역시 Denzel Washington은 똘똘한 흑인 연기의 대명사인가.
최근 들어서 다양한 치료제들의 개발로 인해 HIV는 더이상 급박하고 비참한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병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HIV 감염자들의 확산과 사망은 큰 공포를 주었고, 동성애자=AIDS라는 엉뚱한 공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차별과 편견에 고통 받았다고 한다. 현재에 이르러서야 AIDS에 대한 오해도 많이 풀리고, 또한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변했지만 역시 감성적으로는 잠재적인 거부감을 품을 수 밖에 없으리라. 이성의 고리는 감성의 해결 없이는 풀릴 수가 없다는 것은 뇌과학의 영역에서도 밝혀진 이야기로, 동성애자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그들을 유별나게 대하지 않는 한 나를 귀찮게 할 일 또한 없을 것임을 지속적으로 알려주면 그런 잠재적인 거부감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 또한 동성애자를 상대하면서 평상심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 용기(?)를 주는 친구의 덕담 한 마디, "너는 게이들한테 인기 없는 타입이야.ㅋㅋ"라고.ㅋㅋㅋ
도서관에서 베켓이 밀러 변호사에게 보여준 판례에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것에 대한 사람들의 전반적인 감정이나 태도가 편견의 기본 요소임'을 확인하고, '그로 인해 육체적인 죽음 이전에 사회적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아오 더 멋있게 기억했어야 하는 것을), 인상 깊다. 심지어 1970년대의 판례. 그때 우리나라는 '잘 살아보자'는 구호 아래에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어느 정도 희생해가며 개발 드라이브를 걸 때였는데 이런 판례까지 존재하는 나라라니. <12 Angry Men>을 보고도 느꼈던 거지만, 생명과 자유, 이성에 대한 철학적 깊이가 우리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한 마디라고 생각된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그런 편견과 차별을 한 꺼풀 벗겨내고 사회가 진일보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김수현 작가가 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 있었는데, 극 중 송창의와 이상우가 동성애 커플로 나와서 화제가 되었더랬다. 그 즈음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더불어 내가 '세상이 정말 많이 변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해준 드라마. 그때 김수현 작가가 온갖 비난과 협박을 포함한 이메일을 받았다고 얘기했었는데, 조리퐁의 판매를 제한한다든지, 노래 가사를 빌미로 방송을 제한한다든지 하는 소식과 함께, 아직 우리 사회는 구태의연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뭐 이 뿐이랴, 개인의 판단과 선택을 불신하는 우리 사회는 웹사이트 이용과 SNS에 대한 각종 규제안이 나오고 있으며, 철학과 사상은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규정한 듯 불온서적 명단들을 발표하고 있는 지경이다. 물론 개개인의 가치 판단과 삶의 선택에서 보다 많은 자유를 허락하기 위해서는 인격적 성숙을 유도하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우리 교육, 과연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을까? 아무리 다른 주제로 출발하더라도 결국 교육으로 돌아오고 만다. 교육 개혁이 사회 변화의 실마리가 됨은 이제 나로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
사생활이 가차 없이 까발려지는 법원에서, 본인과 그 가족, 지인들이 겪었을 고통은 비록 영화에서는 잘 묘사되지 않았으나 앤드류의 죽음 만큼이나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소송에 이겼기에 망정이지, 찜찜한 결과 만을 남긴 '도가니'의 예를 떠올리자니 뇌리가 온통 씁쓸하다.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도 영 잊혀질 것 같지 않은 톰 행크스의 불꽃 연기.
"I am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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