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식이라는 게,
기억이라는 게,
또 그걸 전하는 말이라는 게,
얼마나 허술한지,
또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 그 자체가,
얼마나 불합리와 황당함으로 점철되었는지,
그래서 사람끼리 나눌 이야기가 또 그렇게 많은지,
를 허허 웃으며 술 한 잔 하는 분위기로 알려주는 듯한 영화.
이전 영화보다 좀 친절해졌달까,
애시당초 어느 작가의 시나리오 구상이라는 전제 하에 에피소드가 펼쳐지기에,
앞뒤를 맞출 필요도,
실은 이러이러한 사건인데 저렇게들 인식하고 기억하고 전달하나보다..라는 추측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마치 어떤 후배 시나리오 작가가 한 술자리에서,
이제 막 사회물을 맛본 치기와, 갓 마신 소주에 의한 취기와, 예쁜 여자를 앞에 둔 호기를 반죽하여,
"형 이런 내용인데, 어때요?"
라며 들려준 몇 가지 이야기를,
홍상수 감독이
"옛다, 몽땅 찍어보니 그림이 대충 이렇구만."
하며 보여주는 느낌.
한 시나리오 작가가 친구들에게서 들은 얘기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버무려 만든 이야기를,
홍상수 감독이 듣고 인식하고 기억해서 다시 이야기를 꾸미되 그것을 영상으로써 전달하고,
관객은 그것을 보고 다시 각자 인식의 깜냥대로 기억에 담아간다는,
그 자체가 내게는 블락버스터 뺨치는 스펙타클.
짧은 시간 안에 즐기려면,
가족오락관의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게임을 보면 된다.
겨우 4~5명을 거치는데도 전혀 다른 답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는 그 재미.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뻔한 게 또 매력 - 블룸 형제 사기단 (Rian Johnson, 2008) (0) | 2013.01.04 |
---|---|
소년 탐정 김전일보다는 이편이 훨씬 더 세련되지 않은가 - Brick (Rian Johnson, 2005) (0) | 2013.01.04 |
빅토르 위고가 설마 좋아하려고 - Les Miserables (Tom Hooper, 2012) (0) | 2012.12.20 |
이동진 기자의 2011년 외국영화 베스트10. (0) | 2011.12.08 |
편견은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만... - Philadelphia (Jonathan Demme, 1993) (0) | 2011.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