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사회, 자연을 모두 살펴야 진실한 치료임을 - [인문과 학의학, 치료로 만나다] (강용원, 2014)
'N포세대'라고 했던가.
포기에 포기를 거듭해야만, 겨우 숨 쉬고 밥 먹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사회,
지금의 한국이다.
이런 한국의 병적인 상태를 치유하고자 하는 바램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인문학'인데,
인문학적인 치료를 표방하는 행위들을 접한 저자가,
치료를 주업무로 하는 의료인의 입장에서,
본인이 가진 인문학적인 견해를 첨부하여,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현재 한의사로,
과거에 신학대를 다녔고, 사회운동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는데,
그것이 책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원효의 '화쟁' 사상을 본인의 해석대로 진료 과정에 응용하고 있으며,
치료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가족, 국가, 나아가 자연까지 다루어야 진정으로 치료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왜 현재 한국사회는 인문학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왜 저자가 그에 대한 글을 쓰게 됐는지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병적인 상황을,
일제시대부터 이어진 부패한 정치권력과,
노예화를 부추기는 저급한 자본주의,
그에 기생하여 시스템을 공고히 만드는 데 열중하는 종교단체,
이 세 가지를 축으로 설명하는데,
사회운동에 깊게 몸 담았던 저자의 문장들이 사뭇 날카롭고 통쾌하게 느껴진다.
그 뒤로 현재 한국 인문학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강신주나 법륜을 비판하는 대목이 이어지는데,
비판의 내용 자체는 나도 평소 어느 정도 들었던 생각이어서 공감할 바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 근거가 미약하여, 저쪽은 그르기 때문에 그르고, 나의 사상은 옳기 때문에 옳다...는 동어반복의 모두까기처럼 보여서 조금 불편했다.
내 지인 중에 좀 황당한 내용을 근간으로 하는 종교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말투와 닮아서 더욱 불편했던 부분.
다음으로 원효의 화쟁 사상에 대해 설명하는데, 종교적인 학식이 없이는 이해하기가 꽤 어려운 내용인데다,
말투와 사용하는 용어 또한 어려워서 가독성이 떨어진다.
책의 앞부분에서 전문가만 공감할 수 있는 어려운 인문학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는데,
원효의 화쟁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만큼은 저자 스스로의 비판이 고스란히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사실 나는 인문학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갖춘 글이라면,
좀 더 뜻을 분명히 하고 오독의 여지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어려운 전문 용어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에서 이 책은 비판 받을 것이 별로 없으나,
다만 책의 앞부분에서 다른 인문학을 비판한 것이 있기에 자가당착으로 보여서 좀 안타까웠다.
앞뒤 내용과도 무게감이 맞지 않아서 전체적인 글맵시도 해치지 않나 싶다.
저자는 화쟁 사상에 대한 학계의 일반적인 해석을 비판하는 이 내용을 꼭 넣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책의 독자는 인문학적인 치료를 요하는 일반인들로 상정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좀 더 쉽게 쓰고,
화쟁 사상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해석과 기존 학계에 대한 비판은 따로 책을 내거나 저널에 기고하는 것이 어땠을까.
퇴고의 과정에서 아내나 자녀들, 친지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더라면 이런 부분은 수정할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책의 후반부에서 치유의 대상이 개인의 차원에서 머무를 것이 아니고,
가족, 국가, 자연에까지 확대하여야 진정한 치료라고 말하는 부분은 깊은 공감을 준다.
다만 저자가 구체적인 치유 과정으로 소개한 내용이 기존에 비판했던 강신주, 법륜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것과는 별개로,
어떤 사람이 느끼는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그 아픔이 연유한 사회적 배경을 고민하며,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
그런 사람 한명 한명이 아쉬운 요즘 시대에,
그러면서 옳은 말 한 마디 쉽게 내뱉을 수 없는 이 시대에,
이런 한의사가 이웃으로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저자의 용기 있고 의로운 커밍아웃이 상처 입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길 바란다.
끝으로, 저자가 인용한 함민복의 "꽃"이라는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책의 페이지를 그대로 사진으로 올린다.